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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올바이오파마 이형철 부장, (WBA) 주니어밴텀급 챔피언, 세계복싱챔피언의 제약사 영업왕 스토리

by 기프트데이 판촉물 2014. 8. 13.

사진캡처 : 조선닷컴​

1994년 WBA Jr밴텀급 챔피언에서 제약회사 영업왕이 된 이형철 부장의 인간승리 스토리를 조선일보(2014.7.10)에서 소개했습니다.
 

실적과 수입이 비례하는 영업직은 능력에 따라 큰돈을 벌 수 있어 매력적이다.
실제로 각종 매체에 소개되는 ‘영업왕’들의 수입은 수억 원을 넘나든다. 자신만의 능력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그들을 살펴보면 보통 사람보다 아이큐가 더 높은 것도 아니다. 연예인 뺨치는 외모를 지닌 것도 아니다. 하지만 ’영업왕’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분명 다른 구석이 있다.
고객의 거절을 판매로 이끌어내는 영업왕 이형철(前 WBA JR 밴텀급 세계챔피언)을 만나 그의 영업비결을 들어봤다.

세계 복싱챔피언에서 제약사 영업왕이 된 이형철
지난 2일 경기 남양주시 오남읍 소재의 종합병원에서 만난 이형철(45‧한올바이오파마 영업부장). 다부진 어깨와 단단해 보이는 팔뚝이 한 눈에 들어왔지만 위압감은 전혀 없었다. 그가 지나다니는 병원 곳곳에서 만난 간호사, 의사 들은 그를 반겼고 밝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복싱으로 세계를 제패했던 94년 WBA JR 밴텀급 세계챔피언 출신이다. 전라북도 김제 출신인 그는 아버지의 도박으로 집이 폭삭 망했다. 도망치듯 서울로 상경한 판자촌 생활은 배고픔의 연속이었다. 가난에 벗어나기 위해 15살에 복싱에 입문했다. 하지만 프로데뷔 후 연속 3연패라는 결과는 주변의 포기와 자신도 챔피언이 되기 끝났다는 좌절을 겪었다. 죽을 각오로 다시 한 번 복싱에 매달린 그는 결국 세계챔피언에 올랐다. 하지만 세계챔피언만 되면 부와 명예가 따라올 거라 생각했지만 가난은 변한 게 없었다. 당시, 챔피언에 도전 시 위암말기였던 아버지에게 챔피언이 되면 집을 선물해 주고 싶었던 꿈은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지킬 수 없었다. 그는 96년 2월 복싱에서 은퇴했다.

사각의 링을 벗어나 15년간 영업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 그는 회사 내에서 ‘영업챔피언’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98년 12월 지금의 한올바이오파마로 입사해 170명의 영업사원 중 매출은 항상 1등을 달렸고 모든 상여금은 그에게 돌아갔다. 3년이 지나야 달 수 있는 주임을 1년 만에 특진했다. 주임에서 대리까지 그리고 과장, 차장을 넘어 10년 만에 부장으로 일반 사원들과 다른 초고속 특진을 해 회사 내에서 가장 빠른 승진도 기록했다.

1. 명함에 있는 세계챔피언
한국제약협회에 가입된 회사만 200여개다. 하루에도 수십 명의 영업사원이 다녀가는 병원에서 매일 같이 제품만을 설명하는 이들을 병원에서는 달가워 할 리가 없다. 그도 신입사원 시절에는 똑같이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쓰레기통에 버려진 영업사원들의 명함들을 보고 생각을 바꿨다고 한다. “남들과 차별화를 고민하다 명함에 세계 챔피언 벨트를 맨 사진을 넣었다”며, “제품보다는 나라는 사람이 왔다갔다는 인사와 안부만 드렸다”고 말했다.
그는 약에 대한 내용보다 자신에 대해 소개했고 그러다 보니 다시 한 번 명함을 보게 되고 관심을 줬다고 한다.

2. 기다림도 노력이고 도전이다
영업사원들은 매번 병원의 북적이는 환자들 틈에서 의사들을 만나보지도 못하고 허탕 치기 일쑤다. 만난다고 해도 제품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시간은 극히 제한적이다.
먼저 그는 자신이 1차적으로 거쳐야 하는 간호사 분들에게 자신을 인식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매번 같은 시간대에 찾아가 만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그는 “메모지, 필기구 또는 여름에는 아이스커피 등을 주면서 상대방을 생각해 주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심어 주려 했다”고 말했다. 결국 간호사에게 전달했던 명함들이 의사들에게 전해졌지만 또 다시 기다림이었다. 이때 보통의 영업사원들은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실적을 위해 포기하고 돌아서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기다렸다.
“8시간을 기다리더라도 그 자리에 있으면 언젠가는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 땀 흘린 만큼 대가는 돌아온다는 그는 “사회생활도 쉽게 좌절하지 않고 노력하고 도전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3. 모르는 것은 무조건 물어본다
IMF경제위기 다음해인 98년 12월. 88:1의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한올바이오파마의 영업사원으로 입사했지만 신입기간 반복되는 제품 이론 테스트에 어려움이 컸다고 한다.
생물학, 화학 등을 전공한 동기들과의 격차도 컸고 운동만 하다 온 그는 공부에 대한 개념이 없어 매번 꼴찌만 했다.
영업챔피언이라고 불리는 지금. 웬만한 어려운 의학용어를 유창하게 설명할 정도인 그의 비결은 단순했다.
“모릅니다. 가르쳐 주십시오”라며 솔직하게 말했고 적극적으로 물어봤다고 한다.
동기들만이 질문의 대상이 아니었다. 간호사든 의사든 배움이 필요하면 솔직하게 말했다. 그는 “배우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했다.

조선일보 김채호 기자

​-시사점-

​. 이 방법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이것이 아니다 싶으면 과감히 버릴 줄 알아야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다.

. 배고품과 고난을 겪어본 사람만이 포기와 좌절을 딛고 꾸준히 도전하는 근성이 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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