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결정시간을 줄여야 산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 과연 요즘 시대에도 맞는 말일까. 최근 일본의 자존심이라 불리던 샤프가 올해 대만 훙하이그룹에 매각되어 충격을 주었는데 전문가들은 샤프의 몰락의 원인이 ‘경영자들의 지나친 꼼꼼함’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샤프는 세밀한 시뮬레이션 회의를 통해 히트 상품을 내놓는 것으로 유명했다. 샤프가 1980년대 이미 포화 상태였던 카메라 일체형 VTR(현재의 캠코더) 시장에 진출해 성공을 일군 것도 경영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철저하고 꼼꼼하게 준비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나타난 액정 패널의 단가 하락, 한국과 중국 업체의 급성장과 같은 변수를 샤프 경영진이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했다. 상상하지 못한 변수들이 차례로 일어나자 샤프는 이에 따라가지 못한 채 우왕좌왕했다. 결국 지나친 꼼꼼함과 더딘 의사결정으로 변화가 빠른 사회의 흐름에 즉각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채 몰락해 버리고 말았다.
최근 의사 결정 시간과 일의 효율성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의사 결정 시간이 줄어들면 특정 사안에 대해 충분히 검토할 시간이 부족해지고 이로 인해 실패 확률이 높아지게 되지 않을까’ 라는 것이 기존 경영가들의 생각이었지만, 변화의 속도가 중시되는 현대사회에서 회의를 통해 미래에 다가올 리스크를 대비하는 것은 시간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생각으로 바뀌고 있다. 회의에 할애하는 시간이 적은 기업일수록 좋은 성과를 거뒀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베인앤컴퍼니는 매출액 1조원 이상의 글로벌 기업 760개사를 대상으로 의사 결정 효율성을 평가한 결과 높은 점수를 받은 기업이 그렇지 못한 기업에 비해 과거 5년간 매출액 성장률이 5%포인트 높았다고 발표했다. 의사 결정 속도가 빠를수록 결정안의 질이 높았으며, 결단 사항의 실행도 원만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의사결정을 빠르게 하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몇몇 기업들은 ‘회의 없는 기업문화’를 만들기 위한 나름대로의 경영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세계 최대 인터넷 기업인 구글은 팀원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서 하는 회의를 1년에 2회 정도만 실시한다. 예를 들어 최초로 팀이 꾸려지게 되면 회의를 소집해 전체 목표와 팀원 각자의 개별 목표를 설정해주고, 약 1~2주 후 다시 모여 지난 회의의 문제점을 수정하는 식이다. 이 두 번의 미팅 이후 팀원들 간 의사소통은 전화나 이메일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진행된다. 반도체 회사 인텔에서는 회의를 소집하려면 경영진부터 말단 직원까지 누구나 회의를 하고자 하는 이유를 자세히 적어 담당 부서에 제출해 허락을 구해야 한다. 이 과정이 매우 번거롭기 때문에 인텔에서는 대규모 회의가 열리거나 회의 시간이 길어지는 일이 거의 없다. LG전자에서도 한 달에 한번 ‘회의 없는 날’을 만들어 조직문화 개선에 나섰다. 불필요한 책상 회의를 없애고 실무에 집중하는 효율적인 조직문화를 조성하겠다는 취지에서 만든 것으로 이 제도가 실행된 달부터 매월 하루는 무조건 회의를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빠른 의사결정을 위해서 경영판단을 소홀히 하라는 것은 아니다. 최근 인공지능의 발달로 경영 판단의 근거가 되는 자료 도출이나 의사 결정 과정을 로봇이 대체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사람이 처리하는 양보다 몇 배는 더 많은 정보를 분석하기 때문에 더 효율적인 경영판단이 가능해졌다.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IFTF(Institute For The Future)에서 iCEO라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는데 이 소프트웨어는 과제가 정해지면, 사내외의 전문가를 파악해서 업무계약을 체결하고, 업무를 배분하고, 일정을 관리하고, 전문가들의 결과물로부터 최종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경영의 전반적인 과정을 수행한다. 보고서 작성과 같은 업무는 물론이고, 인사관리, 영업 등을 스스로 해내는 소프트웨어다. 이 덕분에 기업의 회의시간은 단축되고 의사 결정 속도도 빨라졌다. 일본의 종합 제조 회사인 히타치(日立)와 통신사인 소프트뱅크가 iCEO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는 요즘 세상에 빠른 의사결정 속도를 갖추는 것은 기업의 최고 경쟁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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