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캡처 : 구글 www.google.co.kr
구글, 기술이 좋아서 성공한 회사는 아니다.
2014-10-30
우리가 잘아는 구글, 이 회사의 성장스토리를 잘 정리한 글이 있네요. 한국경제신문 2014.10.17. 보도된 내용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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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래리 페이지는 2012년 구글 복귀 1주년을 맞아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벤처의 열정과 도전정신으로 살아갈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페이지는 2011년 10년 만에 경영일선에 복귀했다. 그동안 회사를 맡아 운영하던 에릭 슈밋은 회장으로 물러났다.
구글에 복귀한 페이지는 야심차게 로봇과 자동차, 의료기기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지난 4년간 100개에 가까운 기업들을 인수합병(M&A)했다. 덕분에 검색업체로 시작한 구글은 전 세계 정보기술(IT)시장을 호령하는 제국으로 성장했다. 2004년 기업공개 당시 230억달러였던 시가총액은 올해 17배 이상 늘어나 4000억달러를 넘어섰다.
래리 페이지는 1973년 미국 미시간주에서 컴퓨터를 전공한 칼 페이지와 글로리아 페이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미시간주립대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강의했고 아버지도 같은 학교의 컴퓨터 공학과 교수였다. 아버지인 칼은 1960년 컴퓨터 과학 분야에서 처음으로 학위를 받은 사람이기도 했다. 1970년대는 집에 컴퓨터가 있는 것이 흔하지 않았지만 래리에겐 컴퓨터는 좋은 장난감이었다.
여섯 살 때부터 컴퓨터를 다루기 시작한 래리는 학교 과제물을 워드프로세서로 작성한 문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그는 훗날 이그룹이라는 닷컴회사를 창립했던 형과 함께 시간만 나면 컴퓨터 등 모든 물건을 분해하며 놀았다.
미시간주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한 후 래리는 실리콘밸리가 있는 스탠퍼드대로 진학하기로 결심한다. 스탠퍼드대 진학에 앞서 대학 견학을 갔던 래리는 운명적인 만남을 한다. 스탠퍼드대에서 공부하던 세르게이 브린(구글 공동창업자)이 래리의 학교 견학에 안내자로 나온 것. 이 일로 둘은 서로 ‘특이한 녀석’이라는 인상을 갖게 된다.
이후 둘은 각자의 인생을 살았다. 래리는 스탠퍼드대에 입학한 후 정부가 지원하는 연구프로젝트로 ‘디지털 도서관 추진 계획’에 맞는 검색엔진을 만들게 된다. 같은 기간 세르게이는 수집한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저장하기 위한 드라이브 사용방법을 개발하고 있었다. 1995년 다시 만난 그들은 두 가지 기술을 접목할 수 있는 방안을 찾게 된다.
래리는 이 기술을 바탕으로 창업하는 대신 다른 검색 엔진에 판매하고 박사과정을 마치고 싶어했다. 하지만 래리가 책정한 100만달러라는 가격에 검색 기술을 사려는 회사가 없었다. 결국 래리는 세르게이와 함께 투자자들을 모아 1998년 10의 100승을 의미하는 용어 ‘구골(googol)’에서 이름을 딴 구글을 창업하게 된다.
초창기 래리는 지원자들을 일일이 면접하고 자기들과 비슷한 사람을 고용했다. 기업 문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래리는 훌륭한 인재를 끌어오기 위해 컴퓨터 광들이 좋아하는 놀이터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당구대가 갖춰진 오락실, 테이블 축구 기구와 비디오 게임기뿐 아니라 안마의자와 낮잠을 잘 수 있는 장소를 제공했다. 상근 안마사도 고용해 직원들이 피곤할 때면 언제든 이용할 수 있게 했다. 고급 요리와 음료수, 간식 등도 언제나 먹을 수 있게 제공했다.
이 같은 근무 문화는 지금까지도 대부분 유지되고 있다. 구글 직원들은 보육원비를 지원받고 무료식사, 세탁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롤러스케이트나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많을 만큼 자유로운 분위기도 그대로다.
래리는 직원들의 자율성을 키우기 위해 창업 초기부터 ‘20% 룰’이라는 독특한 제도를 도입했다. 이 룰에 따라 구글 직원들은 근무시간의 20%를 현재 맡고 있는 일과 상관없는 일이나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거나 이미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도 있다. 업무와 상관없는 일을 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 것이 장기적으로 창의성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다.
프로젝트도 소그룹 위주로 진행하도록 했다. 구글에서 주요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인원은 5~6명 정도다. 소규모 조직이 빠르고 보다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그 안에서 직원들은 직무의 경계 없이 서로의 일을 이해하고 어떤 일을 맡겨도 해결할 수 있는 인재로 성장하게 된다.
래리는 제품과 기업 혁신에 집중하겠다며 2001년 슈밋을 CEO로 고용했지만 2011년 복귀했다. 페이스북 등이 부상하며 경쟁이 치열해지자 빠르게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더 빠르게 움직여 더 많은 것을 성취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CEO 복귀를 선언했다.
래리의 복귀와 함께 구글은 끝없는 식욕으로 M&A를 진행하고 있다. 래리는 인수 기업을 고를 때 재무제표를 분석하는 대신 칫솔테스트라는 독특한 과정을 거친다. 칫솔테스트는 기업을 사기 전에 ‘소비자들이 그 기업 제품이나 서비스를 하루에 한두 번 이상 쓰는지’ ‘일상적인 삶을 더 나아지게 하는가’ 등의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실제 생활에서 유용성과 혜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도널드 해리슨 구글 부사장은 “래리 페이지는 인수합병 초기부터 기업의 잠재적 발전 가능성까지 고려한다”며 “투자 은행 등의 조언은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인수한 기업만 29개에 달한다. 구글 M&A의 특징은 스마트폰을 넘어 모든 사물과 생활이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이를 위해 사물인터넷, 클라우드 서비스, 동영상 광고, 게임 등 다양한 기업을 인수하고 있다. 로봇도 관심 분야의 하나다. 지난해 12월 불과 1주일 만에 휴머노이드 제조사인 샤프트를 비롯 세계 최고 수준의 로봇회사 7개를 인수했다. 지난 5월엔 해외 M&A에 최대 300억달러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래리 페이지는 “기술이 우리의 삶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며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기술에 투자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
= 시 사 점 =
구글, 기술이 좋아서 성공한 회사는 아니다. 컴퓨터 광들을 제대로 불러 모았고, 창의적으로 일할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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