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우 카라카라 대표가 중국 베이징시 차오양구 왕징에 있는 사무실에서 자사 제품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中화장품보다 더 싸게"…초저가 화장품으로 대륙 뚫었다
2003년 당시 40대 초반이던 이춘우 카라카라 대표(54·사진)는 갈등에 빠졌다. 회사 내에서 잡은 기회를 누릴 것인가, 꿈을 좇아 사표를 낼 것인가. 기회는 삼성그룹에서 핵심 요직으로 꼽히는 그룹 비서실 재무팀으로 발령난 것이고, 그를 흔드는 꿈은 중국에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사업을 하는 것이었다. 그룹 재무팀으로 가면 영영 자신의 꿈을 펼칠 기회를 놓칠 것 같았다. 그는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 후 12년, 그가 현지에서 설립한 카라카라는 중국 주요 60개 도시에 150여개 대리점을 둔 화장품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매출은 100억원. 이 중 20~25%가 순이익이다.
화장품 못 쓰는 중국 여성 공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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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카라는 규모는 크지 않지만 독특한 성공전략으로 중국 현지와 한국에서 동시에 주목받았다. “중국 화장품보다 싼 한국 화장품을 만들겠다”는 게 그의 전략이었다. 이 대표는 처음부터 차별화를 시도했다. 아모레퍼시픽이나 LG생활건강 등 대기업이 고가 전략을 펼 때 그는 정반대 시장을 봤다. “중국에서 무슨 사업을 할까 고민할 때 13억명의 인구 중 여성이 7억명이고 이 중 화장품을 못 쓰는 여성 비중이 70%가 넘는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바로 이거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대표는 화장품이 비싸서 못 쓰는 4억~5억명의 중국 여성에게 중국에서 ‘가장 싼’ 제품을 제공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중국 화장품시장은 지난해 기준으로 4040억위안(약 72조원) 규모다. 이보다 더 큰, 아직 개척되지 않은 시장을 최저가 제품으로 공략하겠다는 전략이다.
카라카라 제품은 한국산 화장품에 비해 품질은 크게 뒤지지 않지만 가격이 평균 3분의 1 수준이다. 이 대표는 “지난해를 기점으로 사업이 안정적인 성장궤도에 올랐다”며 “이런 추세라면 4월 말 현재 150개인 점포가 연내 250개 정도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생산비용 최소화 비결은 ‘발품’
카라카라가 품질에 비해 가격을 낮출 수 있는 배경엔 ‘비용 최소화’라는 전략이 있다. 이 대표는 “처음부터 생산·관리비용을 최소화하고 품질과 직원 임금은 업계 최고 수준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이를 지켜왔다”고 말했다.
비용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그의 말대로 ‘지독스러운’ 것이었다. 그는 삼성그룹(옛 제일제당) 재직 시절 중국 지역전문가 1기로 베이징에서 5년간 근무한 경험이 있다. 당시 구축한 중국 인맥이 사업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기존 인맥은 싸고 좋은 화장품을 만들어줄 곳을 찾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답은 ‘발품’ 밖에 없었다.
100위안에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곳을 찾으면 그 다음엔 90위안으로 물건을 대줄 수 있는 곳을 찾아 나섰다. 이렇게 해서 찾은 우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가 7곳이다. 이 대표는 “업체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이들이 카라카라 경쟁력의 바탕”이라고 말했다.
비용 줄여서 회생
중국에서 화장품 매장에 비치하는 품목은 보통 250개에서 300개 사이다. 이 중 실제로 팔리는 품목은 50개 안팎. 나머지는 구색용이다.
안 팔린 제품은 가맹점 점주에게 큰 부담이다. 카라카라는 가맹점 모집 때 점주에게 재고를 모두 떠안아주겠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초기 판매망 구축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경험이 없어서 그런 결정을 내린 면도 있었다. 결국 이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이 대표는 “구색용 제품까지 대량으로 만들고 나중에 수거·폐기까지 하니 ‘돈이 앞으로 들어왔다 뒤로 빠지는 꼴’이었다”고 회상했다. 직장생활 때 번 돈과 주위 투자를 받아 만든 자본금 10억원이 금세 바닥났다. 사업을 접어야 할 위기였다. 어렵사리 차입으로 돌려막으며 버텼다. 그때부터 1년에 두 번 모든 매장을 대상으로 재고를 조사해 안 팔리는 제품은 생산리스트에서 과감하게 뺐다.
대신 ‘싸고 좋은’ 정예 제품으로 승부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인건비와 기타 관리비용도 예외가 아니었다. 카라카라의 정직원은 30명이다. 이들이 7개 공장의 생산과 납품 과정, 주요 60개 도시 150개 점포 관리를 모두 맡고 있다. 중국 업체 관계자들은 견학을 와서 “믿을 수 없다”고 혀를 내두른다. 한 명이 두세 명 몫을 일하는 셈이다. 이들은 사무실에서 볼펜을 쓸 때도 심을 갈아 끼우는 것만 쓰고, 메모할 때는 이면지를 잘라 뒷면을 사용한다.
직원 최고 대우로 비전 공유
‘마른 수건 쥐어짜는’ 경영 방식이 지속가능 할까. 이 대표는 오히려 “직원들이 나보다 비용 줄이기에 더 열심”이라고 말했다. 그 비결은 복지에 있었다. “똑같은 연차를 놓고 비교했을 때 카라카라 직원이 받는 연봉은 업계 최고이고, 삼성전자 중국법인에도 뒤지지 않는다”는 게 이 대표 얘기다. 회사 운전기사도 마찬가지다. 2013년부터는 전 직원에게 한국과 홍콩·대만, 싱가포르, 유럽 연수 기회도 주고 있다.
이 대표는 “회사생활에서 최고경영자(CEO)로서 가장 공을 들이는 부분이 직원들과 사업 비전을 공유하기 위해 교육하는 것”이라며 “우리가 왜 열심히 일해야 하고, 그것을 위해 일하면 보상도 충분히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납득시키는 데 딱 5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베이징=박수진 기자 [한국경제신문 2015.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