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캐나다구스 홈페이지
자아 표현 소비(identity signaling consumption)
2014-12-08
작년에 우리나라에서 캐나다산 구스 신드롬이 불었죠. 이 제품의 스토리에 대한 내용을 보니 이해가 되네요. 조선일보 2014.11.29. 보도 중 일부내용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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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스 맥키는 1931㎞에 달하는 알래스카 설원(雪原) 횡단 개썰매 경주 이디타로드 대회에서 네 번 우승한 전설적 챔피언이다. 레이 자합은 33일간 남극을 전력 질주, 남극 트레킹에 성공한 탐험가로 '초(超)극기 마라토너'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이 두 사람이 극한(極寒) 지역으로 탐험을 떠날 때 반드시 챙기는 물건이 하나 있다. 바로 캐나다 구스 방한복이다. 이름 그대로 1957년 캐나다에서 출범한 이 브랜드는 지역에 따라 영하 20~30도까지 떨어지는 캐나다의 매서운 추위를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항공기 조종사, 극지방 연구원, 다큐멘터리 촬영 감독 등 추위와 맞서 싸워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지난 10년간 전 세계 매출이 3000% 늘었다.
그 캐나다 구스가 지난 겨울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일부 품목은 매장에서 품귀 현상까지 빚었고, 모방 제품이 우후죽순 등장했다. 실용성 측면에서 보자면 캐나다 구스는 지난 10년간 겨울 평균 기온이 영상 0.5도에 불과한 한국에선 굳이 입을 필요가 없는 옷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린 캐나다 구스 제품 '엑스페디션 파카'는 영하 30도 이하 기후에 적합한 옷으로 본래 목표 고객층은 극심한 추위를 이겨내야 하는 남극 기지 연구원들이었다.
그런데도 왜 그토록 많은 소비자가 열광하는 것일까? 토론토 본사에서 만난 캐나다 구스의 데니 리스 사장은 한국은 물론이고 뉴질랜드, 홍콩, 콜롬비아 등 겨울철 기온이 그리 낮지 않은 나라에서도 캐나다 구스가 인기를 끄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저는 그런 지역 소비자들이 캐나다 구스를 구매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레인지 로버를 구매하는 이유와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도심에서 운전하는 사람들은 사막이나 밀림 같은 최악의 환경에서 사용하기 위해 만든 레인지 로버 같은 차가 굳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특별한 스토리와 진정성을 가진 제품을 원합니다. 거기다 기능까지 좋다면 두말할 나위가 없겠죠."
소비자들은 물건을 살 때 단순히 제품만 구매하는 것이 아니다. 그 제품의 상징성, 관점, 의미, 철학까지 함께 구매한다. 조나 버거 와튼스쿨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자아 표현 소비(identity signaling consumption)'이다. 주행 속도가 경쟁사에 비해 유독 빠른 것도 아니고, 고장이 잘 안 나는 것도 아닌 할리 데이비슨이 꾸준히 인기를 끄는 이유는 소비자들이 '남성성' '마초다움' 등 할리 데이비슨이 지닌 상징성에 기꺼이 돈을 지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브랜드가 소비자들로 하여금 이러한 소비를 유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장에는 수없이 많은 브랜드가 나타났다 사라진다. 그중에서 소비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지갑을 여는 브랜드는 소수에 불과하다. 리스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브랜드'라는 것이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십여년간 모든 것이 브랜드화(化)되었어요. 지금 우리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 방도 브랜드로 꽉 차 있지요. 비즈니스 스쿨은 학생들에게 어떻게 하면 브랜드를 만들 수 있는지 가르칩니다. 브랜드가 기업에 돈을 벌어다 주니까요. 하지만 그런 작업 때문에 거꾸로 브랜드가 너무 흔해 빠진 존재로 전락했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추구하던 것과는 정반대 결과를 낳게 된 거지요. 모든 제품이 브랜드가 되면서 결과적으로 모두가 다 같아져 버린 겁니다."
리스 사장은 숱한 브랜드의 홍수 속에서 자아 표현 소비의 대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진정성 있는 스토리에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중국 의류 공장에선 수많은 노동자가 세계 각국 브랜드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그건 그저 같은 작업을 하면서 그냥 제품 로고만 갈아 끼우는 데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 작업 방식에는 전혀 브랜드의 영혼이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어떠한 마법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많은 제조 회사가 그런 식으로 제품을 만들면서도 마치 자신들의 제품에 어떠한 진정성 있는 스토리가 깃들어 있고,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고 말을 해도 그건 그냥 '그런 척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들이 만든 재킷은 경쟁사 제품을 제조하는 생산 라인에서 똑같은 공정을 거쳐서 찍어낸 것이니까요."
캐나다 구스가 브랜드의 영혼을 지키는 방법은 '인간을 추위로부터 해방시킨다'는 목적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다. 뉴질랜드나 홍콩 사람들이 캐나다 구스를 사건 말건 그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북극 지도가 그려진 이 회사 로고나 아웃도어 전문가들이 포진한 이 회사의 임원진 구성도 그 점을 잘 보여준다.
또 한 방법은 100% 메이드 인 캐나다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우리에게 '메이드 인 캐나다'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다른 곳에서 다른 원료를 사용해 제품을 만든다면 그것은 '스위스 워치'를 스위스가 아닌 다른 곳에서 만드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까요."
캐나다 구스는 1957년 설립된 장수 브랜드다. 토론토 시내에서 자동차로 20여분 거리에 있는 공장에 가니 10~20년 이상 일하고 있는 직원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비상장이라 매출액을 공개하지 않지만, 로이터에 따르면 작년 매출액은 약 2억캐나다달러(약 2000억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51개국에 진출했는데, 매출 비중은 유럽(45%)이 가장 크고, 미국(20%), 캐나다(15%), 아시아(10%)가 뒤를 잇는다.
리스 사장은 모든 질문에 군더더기 없이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런 그가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진정성’이었다. “당신이 말하는 진정성의 정의(定義)가 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진정성은 진짜입니다. 그리고 평판입니다. 진짜라는 평판이 형성되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기업이 하는 여러 마케팅을 인식하지만, 인식이라는 것은 평판과는 다릅니다. 평판이라는 것은 인식의 단계를 넘어서 직접 본인이 경험을 해 본 뒤에 ‘아, 이건 진짜배기가 맞군’ 하는 것을 느끼고서 만들어지는 것이니까요.
캐나다 구스가 진짜라는 평판을 듣기까지 수십 년이 걸렸습니다. 극지방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캐나다 구스 제품을 입고 생활해 보고, 혹한의 기후에 야외 촬영을 하는 영화 관계자들이 캐나다 구스를 입고 추위를 이긴 체험을 하면서 제품에 대한 신뢰를 쌓게 됐습니다.”
리스 사장이 ‘메이드 인 캐나다’를 고수하는 이유도 진정성 때문이다. 자국에 공장이 없는 장갑을 제외하곤 모든 제품을 캐나다에서 생산한다. 원료 역시 100% 캐나다산(産) 다운을 사용한다. 그는 “오늘날 글로벌 제조업체 중에서 모든 생산 과정을 자국에서 하고 있는 곳은 찾아보기가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내에 남아 있는 것이 리스크이긴 하지만, 해외로 나가 남들처럼 만들었다면 오늘의 캐나다 구스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캐나다 구스는 제품을 홍보할 때 전문 모델을 기용하는 대신 입소문 마케팅에 많이 의존한다. ‘아는 사람에게 물어 봐(Ask anyone who knows)’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있을 정도다.
“우리도 전문 모델에게 옷을 입혀 놓고 홍보 사진 촬영을 하긴 해요. 하지만 잡지 같은 데 번지르르하게 광고를 하진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소비자들과 좀 더 진실한 방법으로 소통을 하고자 하거든요. 직접 입어 본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전달함으로써 말이죠. 요즘의 SNS는 우리에게 그야말로 완벽한 수단이에요.”
캐나다 구스는 ‘구스 피플’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 공을 드린다. 캐나다인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로리 스크레슬릿, 개썰매 레이스의 전설 랜스 맥키 같은 이들이다. 이들처럼 방한이 절실히 필요로 한 사람들이 제품을 입어보고 주변 사람들에게 가치를 전하는 것이 진정성 있는 홍보라고 여긴다. 그들의 의견을 제품에 반영하기도 한다.
“탐험가 레이 자합은 우리가 만든 패딩 제품을 입어보고 난 뒤, ‘얇지만 잘 찢어지지 않는 옷이 필요해요. 저번에 입은 옷은 쉽게 찢어졌어요’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를 위해 얇고 가볍지만 내구성이 강화된 패딩을 개발했습니다.”
☞ 자아 표현 소비 (identity signaling consumption)
소비자는 어떤 제품을 살 때 기능만 보는 게 아니라 그 제품의 상징성, 관점, 의미, 철학까지 함께 구매한다. 레인지 로버는 진흙, 모래, 자갈길 전용 주행 모드까지 갖춘 사륜 구동차다. 도로 환경이 비교적 좋은 한국에선 탈 일이 별로 없어 보이지만, 지난 5년간 6배 성장했다. 레인지 로버가 상징하는 야성과 모험을 구매한다고 볼 수 있다. 조나 버거, 칩 히스 교수의 논문으로 널리 알려진 개념이다.
오윤희 기자
= 시 사 점 =
사업도, 인생도, 정책도 진정성있게 꾸준하면 언젠가는 쨍하고 해 뜰날이 온다. 진정성있는 스토리는 긴 세월속에서 희생과 끈질김으로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