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주 대한상사 사장이 광명의 본사에서 “요즘은 웰빙바람을 타고 집에서 각종 전통주 등을 담가 담금주병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 한경]
대한상사의 주력 상품 중 하나인 항아리.(사진 오른쪽이 최재주 사장, 왼쪽은 부인인 노기용 씨)[사진: 한경]
외국에서도 찾아오는 도자기,유리 전문상사
2016-02-19
경기 광명시 노온사동. 금속양식기 도자기 등 생활용품 도매유통업체들이 모여 있는 이곳에 대한상사가 있다. 겉에서 보면 허름한 창고처럼 보이지만 이 회사는 담금주병 항아리 등의 유통에선 전국에서 손꼽히는 업체다. 게다가 중국 브라질 호주 등지의 바이어들도 찾아온다. 무슨 비결이 있을까.
최재주 대한상사 사장(57)은 틈나는 대로 전국을 누빈다. 김포 여주 이천에서 예산 홍성 합천까지 다닌다. 바이어들이 원하는 도자기제품을 자사 브랜드로 위탁 생산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도자기 생산지를 한눈에 꿰고 있다. 최 사장은 “여주·이천은 생활자기 및 장식용 자기, 예산·보령·김포는 뚝배기와 옹기항아리, 합천은 업소용 뚝배기의 주산지”라고 설명했다. 이곳 사장들과 골고루 친분을 맺고 있다. 국내뿐 아니다. 중국 출장을 1년에 10회 정도 다닌다. 그는 “유통업에 뛰어든 뒤 매년 10차례 정도 중국을 다녀와 그동안 중국 출장 횟수가 140여회에 이른다”고 말했다.
이렇게 발품을 파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 회사는 도자기 및 유리제품 유통전문업체다. 유통업이라면 제조업체가 생산한 제품을 갖다가 팔면 되는 게 아닌가.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다르다. 바이어가 원하는 제품을 자신이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해서 납품토록 의뢰한다. 아이디어 제품을 구상해 제품화하고 박리다매로 판다. 물론 생산된 제품을 파는 경우도 있지만 가급적 바이어 취향을 감안해 자신의 의견을 붙여 공장에 주문한다.
그는 유통업에 뛰어든 지 15년 만에 대한상사를 도자기 및 유리제품 분야에서 굴지의 업체로 일궈냈다. 담금주병(매실주 등을 담글 수 있는 병)과 옹기항아리 유통에선 국내 3위 안에 들 정도로 영향력 있는 업체로 키웠다. 비결이 무엇일까.
첫째, 바이어의 구매 욕구를 정확히 파악한 뒤 아이디어를 가미하는 것이다.
예컨대 내열유리용기의 강점은 바로 불 위에서 내용물을 끓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손잡이가 뜨거워지는 단점이 있다.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그는 국내외 출장을 다니며 아이디어를 수집해 손잡이만 플라스틱으로 만든 제품을 내놨다. 플라스틱 손잡이를 받침대로 삼아 뚜껑을 세울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뚜껑을 그냥 놔둘 경우 국물이 바닥에 묻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마치 스마트폰 뒤에 간단한 받침대를 붙여 세울 수 있게 한 것과 비슷하다. 내열용기를 통해 국을 끓이고 국자로 푼 뒤 이를 마땅히 둘 데가 없는 점에 착안해 손잡이 위에 국자를 둘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불티나게 팔린 것은 물론이다.
유통에 연구개발(R&D) 개념을 가미한 것이다. 이런 아이디어 제품을 끊임없이 개발한다. 박람회장을 자주 찾아 아이디어 제품이 있는지 눈여겨보고 이를 신제품 개발에 연결한다. 매주 2회 직원과 대화하며 소비자들이 제기한 개선 희망사항 등을 귀담아듣는 것도 아이디어를 얻기 위한 것이다.
둘째, 거래처와 상생 전략이다.
최 사장은 제품을 구매할 때는 현금으로 구매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자신이 초창기 유통업에 손댔을 때 제대로 수금하지 못해 고통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납품업체에 현금으로 결제하고 대량 구매하면 자연히 저렴하게 살 수 있다. 여기에 적은 마진을 붙여 박리다매 형식으로 판다. 가격 경쟁력이 생기게 된다. 이런 전략은 때때로 다른 유통업체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최 사장은 “항아리를 처음 팔 때는 이런 전략에 반발한 다른 유통업체들로부터 압력을 받아 항아리제조업체에서 물량을 확보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마진을 많이 남기기보다 좀 더 합리적인 가격에 팔아야 소비자도 좋지 않으냐”고 설득해 마침내 물량을 확보할 수 있었다. 최 사장은 “항아리 유통은 아마도 전국에서 손꼽히는 수준일 것”이라고 말했다.
전통 항아리는 수년 전부터 웰빙바람이 불면서 장류와 김치 효소 등의 보관 용기로 인기를 끌고 있다. 최 사장은 “한창 웰빙바람이 불 때는 회사로 들어오는 골목길이 바이어들의 트럭으로 메워져 교통혼잡을 빚기도 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셋째, 다양한 제품의 취급이다.
최 사장은 “우리는 도자기 및 유리제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하지만 종류는 무려 1만5000여종에 이른다”고 말했다. 바이어로서 이곳에 오면 도자기 유리 관련 용기는 어떤 제품도 구할 수 있게 된다. 그는 “국내 소매점뿐 아니라 중국 호주 브라질 바이어들도 찾아오는데 이는 ‘원스톱 쇼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밥공기 반찬용기 담금주병에서 커피잔 찻잔 주전자 뚝배기 냄비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도자기 및 유리 소재제품을 취급한다. 그는 “불황일수록 다양한 구색의 제품을 취급해야 남들과 차별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 사장이 이 분야에서 자리잡은 데는 잡초처럼 겪은 숱한 고생이 밑거름됐다. 경기 포천 출신인 그는 건설업체에서 일하다가 외환위기 직후 실직해 고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조그만 가게를 하기로 하고 서울 신대방역 부근에 165㎡ 규모의 가게를 얻어 도자기 유통을 시작했다. 최 사장은 “처음 1년은 유통을 배우려고 마진 없이 팔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순탄치 않았다. 세 명의 자녀를 집에 두고 부부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했다. 납품대금을 떼이기도 하고, 선금을 주고 구매한 제품이 제때 도착하지 않는 등 초년병이 겪을 수 있는 갖가지 어려움을 경험했다.
이런 가운데 그는 몇 가지 사업원칙을 정했다. ‘발품을 팔자. 정직하게 결제하자, 이윤은 적게 붙이고 그 대신 많이 팔자. 거래처와 상생하자’ 등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좀 더 좋은 제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반드시 현장을 확인했다. 중국은 선전에서 광저우 쯔보 난징 베이징 탕산에 이르기까지 도자기나 유리생산과 관련이 있는 곳을 훑었다. 이런 노력 끝에 점차 단골이 늘어났다. 이제 국내 납품처는 약 500곳에 이른다. 이 회사가 생산을 의뢰하는 곳은 국내 30여곳, 중국 40여곳에 이른다.
그는 국내만으로 거래처를 한정하지 않았다. 최 사장은 “광명은 인천국제공항에서 한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고 전국으로 연결되는 KTX역이 있어 교통의 요지”라며 이런 점을 감안해 본사를 광명으로 옮긴 뒤 본격적으로 사업 확장에 나섰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중국 바이어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최 사장은 “중국 바이어들은 ‘Made in Korea’에 열광한다”며 “특히 지린성 헤이룽장성 랴오닝성 등 동북3성 바이어들이 한국산 제품을 사기 위해 많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이들뿐이 아니다. 그는 “멀리 호주나 브라질에서도 찾아온다”고 덧붙였다.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이 많지만 이 회사는 최근 1320㎡ 규모의 물류창고를 추가로 얻었다. 최 사장은 “사업에 처음 뛰어들 때 어린 막내아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가슴이 아팠는데 이제는 대학에 입학했다”며 “앞으로 다양한 제품을 개발해 수출을 더욱 늘려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꿈은 광명보금자리가 무산된 뒤 추진 중인 현대식 유통시설에 입주해 번듯한 본사 건물과 매장을 갖고 세계를 상대로 유리와 도자기 제품을 파는 것이다.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한경2016.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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