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주치마 또는 에이프런(apron)이라고도 한다. 에이프런의 어원은 냅킨의 뜻인 라틴어의 마파(mappa)에서 왔고, 불어로 나프롱(napperon), 중세 영어로 napron인 것이 apron이 되었다. 기원은 고대 이집트인데, 당시에는 왕이나 사제(司祭)들이 권위의 상징으로 입었다.
중세에는 무장(武裝)의 일부로도 착용하였는데 에이프런으로서 사용된 것은 16세기경이며 상류사회의 사람들이 주름으로 아름답게 장식된 것을 입었다. 17∼18세기경에 상당히 유행해서 형을 작게 하고 레이스와 자수로 장식한 것, 포켓이 달린 것, 삼각형이나 마름모꼴의 가슴 바대가 있는 것 등이 나타났다. 특히 유명한 것으로 프랑스 앙리 4세비(妃)의 에이프런이 있는데 다이아몬드와 진주로 장식된 것이다. 이에 비해 일반인이 사용한 에이프런은 의복의 오염 방지를 위해 폭이 넓고 세탁이 쉬운 실용적인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행주치마를 언제부터 만들어 사용하였는지 정확히는 알 수는 없으나 일설에서 임진왜란(1593년, 선조26) 2월 행주산성에서 권율 장군이 왜군을 맞아 싸울 때 성 안의 부녀자들이 합세하여 치마폭에 돌을 날라다 병사들에게 공급해 주어 큰 승리를 거두게 되어 당시 부녀자들의 공적을 기리는 뜻에서 치마의 명칭을‘행주’라는 지명을 따서 ‘행주치마’라고 일컫게 되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중종 12년(1527)에 편찬된《사성통해(四聲通解)》에서‘행주치마’라는 말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행주치마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부터 있었던 말일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행주치마는 무명천을 사용하여 치마의 반쪽 정도로 만들어 치마가 뒤쪽으로 휩싸이지 않게 하였고, 길이는 치마보다 짧게 만들었다. 이것을 이용하면 걸을 때나 일을 할 때 치마가 늘어지는 불편을 덜 수 있고, 옷고름이 내려와 음식에 닿는 일도 없어진다. 행주치마는 부엌에서만 입는 치마로 상을 들고 방에 들어가거나, 웃어른 앞에 나설 때에는 일을 하다가도 반드시 이를 벗는 것이 법도이다. 제사음식 등을 준비할 때는 행주치마와 함께‘머리쓰개’를 사용하여 제사음식에 옷고름이 닿거나 머리카락이 떨어지는 것을 막았다.
20세기에는 착용 목적에 맞게 개량되어 가슴 바대가 있는 형, 오버스커트형 ·점퍼스커트형 ·스목형 등이 있고 세탁에 견디는 목면이 많으나 그 외에 비닐클로스 ·에나멜클로스 ·아세테이트 ·폴리에스테르 등 다릴 필요가 없는 합성섬유인 것도 많고, 피혁 ·고무제품 등도 있다.
세계 민속의상 중에는 실용성보다 장식을 목적으로 에이프런이 많다. 한국에서는 원래 겉치마 폭보다 1폭~1폭 반 정도 좁게 하고 길이도 한 뼘 정도 짧게 하여 주름을 잡아 말기에 달아 입었으므로 보통 치마와 형태가 비슷했으나, 뒤 한복판에서 긴 사다리꼴로 벌어지고 치맛단 쪽으로 겉치마의 아랫부분이 약간 내다보였다. 19세기 말부터 서양풍의 앞치마가 전래되면서 병용해 오다가 근래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